<기사입력일자:2025-10-30>
[문화] 제3회 선경작가상 한정원 시인 수상
▶제3회 선경작가상 한정원 시인
선경작가상은 문장을 지키는 작가의 영역을 지키고자 제정하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응모 편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경작가상’에 대한 시인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자는 한정원 시인으로 「의자의 엔트로피」 외 55편이 선정되었다. 김종태, 고봉준 심사위원의 심사평 중에서 “한정원의 시는 시간의 역행이 갖는 실존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번 응모작에서는 시인의 시선이 한층 외부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시세계의 지속성과 응모작 전체에서 느껴지는 시력詩歷과 서정시 특유의 안정감에 주목하여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는 심사배경을 올린다.
수상작과 심사평은 2025년 『상상인』 겨울호(제14호)에 특집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선경작가상 수상자인 한정원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세상의 모든 꿈은 내 안에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은 시 덕분이며 나에게 명령하고 나에게 복종하며 시가 주는 대답을 듣는 것은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 등이 있고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시집으로『의자가 없어서 봄은 오지 않았다』를 발간한다.
상금은 오백만 원이며 상금 등 부대비용은 선경산업에서 지원한다. 선경작가상은 『상상인』과 선경작가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선경산업이 주최한다. 시상식은 2025년 12월 6일 오후 3시, 선경산업 강당에서 있다.
▷심사위원 _ 김종태 시인, 고봉준 문학평론가(글)
■시상식 2025년 12월 6일(오후 3시)
■장 소 선경산업 강당(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 3길 1(서운동)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집은 15권이었다. 예심과 본심을 분리하여 진행했으므로 응모작의 전반적인 수준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응모 편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경문학상’과 ‘선경작가상’에 대한 시인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심은 두 명의 심사자가 본심에 올라온 15권의 작품집을 읽고 각자 2~3권 내외의 작품집을 추천한 후 해당 작품집을 놓고 집중적으로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두 문학상의 응모와 심사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특징으로 인해 중복투고작이 다수 있었는데, 두 문학상의 심사를 함께 맡은 심사위원들 또한 심사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선경문학상’은 개성적인 성격이 돋보이는 응모작에, ‘선경작가상’은 안정감이 두드러지는 응모작에 수여하기로 합의했다.
시 문학상은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선경문학상’과 ‘선경작가상’은 50편 이상, 즉 시집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제출하는 작품상이다. 이는 이들 문학상이 시집 출간을 장려하고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 문학상은 몇몇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 전반적인 작품의 수준, 그러니까 시집으로 출간되어도 그 작품성이 인정될 수 있는 응모작에 수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다만 작품성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선경문학상’은 개성적인 면을, ‘선경작가상’은 안정감을 고려하기로 합의하고 논의를 진행했다.
추천한 작품 가운데 작품성과 안정감을 함께 갖춘 응모작으로 한정원의 작품을 선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정원의 시는 시간의 역행이 갖는 실존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이전 시집에서 시작되어 이번 응모작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응모작에서는 시인의 시선이 이전에 비해 한층 외부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시세계의 지속성과 응모작 전체에서 느껴지는 시력詩歷과 서정시 특유의 안정감에 주목하여 『의자의 엔트로피』를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아울러 상을 받지 못한 분들께는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 _김종태 시인, 고봉준 문학평론가(글)
수상소감
시가 주는 대답은 낯설지 않았습니다그때 저는 낯선 도시의 대학도서관에서 나와 학생식당으로 가는 복도에 있었습니다. 진동음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울리고 전화를 주신 분의 음성을 듣는 순간, 휴대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란 것을 실감했습니다. 학생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그날 저는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시를 찾아 그곳까지 갔던 것이고 오래된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탐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꿈은 내 안에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은 시 덕분입니다.언제나 혼자 견디는 방법으로 고요와 침잠과 유목을 택했습니다. 나에게 명령하고 나에게 복종하며 시가 주는 대답을 듣는 것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억압과 불안과 두통도 감사했고 상상의 행동 안에서 시가 주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은 최상의 권리였습니다.일상적인 언어에 전폭적인 변형을 가하는 매력적인 작업,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오던 중, 늦은 시기에 (그동안은 생각해 본 적 없는) 선경작가상에 모아놓은 작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낯선 도시로 와 익숙하지 않은 캠퍼스의 나무틀과 새들의 신호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언제나 지면에서 평론과 해설을 읽을 때마다 밑줄을 치게 하시는 심사위원 고봉준 교수님, 김종태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이 상을 제정한 선경산업과 이승예 선경작가상 운영위원장님과 상상인에 감사합니다.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작품 중에서
의자의 엔트로피
의자가 없어서 봄은 오지 않았다
바람이 걸려있는 숲속에 서 있었다
구청에서는 버스정류장을 하나 더 만들어 놓고
노인들을 기다렸다
의자를 놓기 위해 정류장을 늘리고
산수국화에 받아놓은 빗물을 주고
목적지 노선표에 전광판을 연결했다
의자가 생기고 소식은 오기 시작했다
약국은 최초로 의자가 있어서 쉴 수 있던 곳
약국에서 만난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다고
면도를 하고 정류장 의자에 나와 앉아 있으면
나도 잘 있는 거라고
연인은 떠났지만 의자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을 때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허리를 받쳐주고 목을 기댈 수 있는 의자를
구청에서 개발했다고
밤에는 별을 보기 위해 따뜻한 정류장 의자에 갔다
봄은 떠나기만 하는 계절
항상 뻥튀기를 사서 들고 오는 노인은
가벼운 과자의 빈 공간이 좋다고
햇살을 향해 앉았다가 경쾌하게 집으로 갔다
우울한 날에는 동편을 향해 앉고
기쁜 날에는 서쪽으로 앉았다
버스는 갈 곳을 짚어 주었다
실시간으로 빨강색 화살표는 깜박거리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은 전광판을 따라
예전에 가본 곳을, 살았던 곳을 기억하며
백 년을 더 살았다
버스정류장에 나와 앉아보는 봄, 가을
노인들은 해가 질 때 다시 의자를 확인하고
구청 직원은 가끔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의자는 따뜻한 바닥을 갖고 있었다
내포
감자를 보내왔다
박스 속에는 흙 묻은 감자가 리본을 두르고 있었다
지나간 소식들이 틈새를 덮고
꽃 대신 보낸 거라고
편지 대신 보낸 거라고
나는 택배 운송장을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감자는 따뜻했다
나의 백팩을 메고 따뜻해졌던 그의 등처럼
목과 허리 사이의 시간이
네 번의 여름을 연락 없이 지나갔다
감자는 도서관처럼 조용하고
호수공원처럼 흐르는 중이었다
가장 뜨거웠던 계절에
잠시 마주했던 지상과 이층 건물을 통과하던
호두나무 냄새가 입 안에서 부서졌다
도청 유리창에서 반사되던 햇살
시외버스에서 내리면 나는
언제나 이마에 차양을 했다
감자가 도착했다
모든 기억을 상자 속에 기록한 채
한 질의 장서가 인쇄 냄새를 말리고 있었다
신안
미궁에 빠져도 좋겠다
젖어있던 흙의 얼굴이 숨을 쉬며 나타난다면
기억의 본색을 드러낸다면
발바닥이 무너져 헤어나지 못해도
이렇게 저렇게
진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해저의 통로라도
꿈을 꾸면서 걸을 수 있겠다
나의 대낮은 망설임뿐이었기에
햇살은 어둠 속을 파고 들어갔던 것
바다 밑에 있던
섬 속에 있던
바람이 귀 기울여 해석한다
쇠제비 갈매기의 삼초간의 신호
데본기로 남아있는 물결 소리에 대하여
퐁포롱, 뽀로롱, 꼬로로롱
거품 물고 낮잠 자고 있는 바다 속 골목에서
태양의 전파를 타고 달려오는 육지의 촉수
썰물의 간격은 견딜만하다
물고기들은 움직일 수 없는 풍경에 싸여
더 침잠해도 되겠다
무너졌던 발바닥이 꼿꼿하게
물 위를 긋고 가는 수평선과 지평선의 경계
갯벌의 농도는
밀물일 때 더 짙어지고
미궁으로 빠져들던 비릿한 내음은
본색을 숨길 수 없어 속울음으로
바닥에 가 닿는다
슬픔의 도구
감자처럼 떠나왔지 우리는
슬픔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적재함 안에서
상자 안에서
눈물을 키우고 독을 피우는 그늘의 조건
당신은 올 수 없고 나는 갈 수 없는
오직 햇빛이 그어놓은 유리 국경을
겨울비가 몰려와 붉은 일요일의 무게로 짓눌렀지
시청 앞 광장 시계는 언제나 열 시 십 분,
시침과 분침의 포즈로 웃어보라고
멈춰있는 총성 후의 고요는 기호처럼 턱을 괴고
어제와 내일의 안부를 알려줬지
흑백 골목이 끝나고 언덕이 사라지면 시작하는 해안
흙 묻은 목장갑을 끼고 도착한 엉겅퀴 가시들
짓무른 껍질과 잘린 싹을 감싸고 있는 신문지를 펼치며
벨파스트의 변색된 뉴스를 골라내었지
오래된 사건에서 침전물이 된 비밀을
건기 속 감자가 뚫고나오는 울음을
당신은 그걸 나에게 보냈지
적재함 바닥에서 조약돌이 되었을까
수명이 긴 시계는 시간의 싹을 틔우며
열 시 십 분의 광장을 지키고 있지
움직이는 침대
너의 숨소리가 빠져 나갈 때
베개는 부풀어 오른다
나의 잠꼬대는 너의 어깨 위에서
나의 새벽 세 시는 네 발 밑에서 기어 나온다
머리를 들면 바다가 보이고
다리를 올리면 하늘이 낮아지는
천장과 바닥 공기를 가로지르는 트윈베드 경계선
밤이면 서로 다른 높이에서 새가 잠드는 시간
각도를 틀 때마다 우리는 엇갈리는 비트로
꿈을 꾼다
나의 오른쪽은 너에겐 왼쪽
그냥 누우면 보이지 않는 발가락이 궁금해서
스위치를 누른다
굽어지는 만큼 뼈들은 안녕하다고
침대는 위-잉 위-잉 숨어있는 몸을 데리고
굽힐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다
정강이뼈도 날아오른다
나비 꿈을 꾸고 싶은 날은
무중력으로 침대를 타고 눕는다
너는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머리를 둔다
한정원
서울 출생.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으로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 『마마 아프리카』 『낮잠 속의 롤러코스터』 『그의 눈빛이 궁금하다』 등.
제3회 선경작가상 수상.
현재 신세계 아카데미 시창작교실 출강 중.
■ 장 소 선경산업 강당(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3길 1(서운동)
미국최대한인포털 뉴욕코리아, 문화부 John Ki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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