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자: 2025-08-05>
제 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강은미 수상
▲최치원시인문학상 강은미 수상
제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자는 「입스 증후군」 외 4편을 응모한 강은미 신인이다. 심사평 중에서 섬세한 감각으로 현대적 정서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새로움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과 상처, 기억의 풍경을 매우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균열에서 나타나는 상실감과 고립감을 구체적이며 살아 있는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는 심사 배경을 밝혔다.
당선작은 2025년『상상인』 가을호(제13호)에 특집 게재될 예정이며 이번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자인 강은미 시인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5년 제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심사위원_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상금은 이백만 원이며 함양군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지리산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계간 『상상인』과 지리산문학회가 주관한다.
■ 시상식 2025년 10월 18일(오후2시) ■ 장 소 경남 함양군 함양문화예술회관
심사평
‘최치원신인문학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대문필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으로 신진 시인의 발굴을 위한 등용문이기도 하다. 이번 20회 공모에는 이제껏 가장 많은 인원인 750여 명의 시인 지망생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최치원신인문학상의 위상을 실감하는 숫자가 아닌가 한다. 응모작이 많아 큰 수고를 감내해야 했던 예심위원들은 꼼꼼한 검토를 거쳐 그중 여덟 분의 작품을 본심에 추천했다.
신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다. 이미 나와 있는 훌륭한 작품들의 성과를 잘 학습해 비슷한 작품을 써내는 것은 이제 시 쓰기를 시작하는 신인으로서는 의미 없는 작업이다. 신인은 자기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움만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새로움이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완결성과 함께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 된다. 이런 심사의 기준에 따라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안경 너머 보는 눈」 외 4편과 「밈」 외 4편 그리고 「입스 증후군」 외 4편이 최종심에 올려지고 심사위원들의 긴 논의가 이어졌다. 세 사람의 작품 모두 신인상을 받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많은 논의 끝에 「안경 너머 보는 눈」 외 4편은 신선한 상상력과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주제의식은 돋보였으나 시어나 이미지 간의 긴밀한 내적 연결이 부족하고 전체적인 구성의 밀도가 약해 당선작에서 제외하였다. 「밈」 외 4편을 두고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어졌다. 언어의 다양한 실험적 사용과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력이 큰 장점이나 시적 구성의 완결성이 조금은 부족하고, 정서적 깊이에 도달할 만한 절제된 언어의 사용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감점을 받았다.
오랜 숙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강은미의 「입스 증후군」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강은미의 이번 당선 작품들은 섬세한 감각으로 현대적 정서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새로움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과 상처, 기억의 풍경을 매우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균열에서 나타나는 상실감과 고립감을 구체적이며 살아 있는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입스 증후군」과 「죽도」에서는 시상의 전개와 구성력이 돋보이며, 「푸른 머리카락」과 「차를 만들며」는 색채라는 감각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개인적 감성과 사회적 상상력이 유기적으로 얽혀 현대적 정서를 새롭게 구성해 내는 이 작품들은 신인의 패기와 성숙한 감수성이 함께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당선자에게 깊은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의 큰 발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유성호(문학평론가)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글)
당선소감
도서관 가는 길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이루어진다더니 왜 옛말은 그른 게 없는 걸까. 무거운 돌을 내려놓고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속이 후련하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됐다. 젊은 시인의 수업은 너무 오래간만이어서 감격스럽고,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두툼하게 복사한 프린트물에는 최근 시인들의 시가 빼곡했고, 읽고 설명을 들으면서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희열감이 올라왔다. 30대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40대까지 많이 낙선하면서 더 이상 패배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시를 덮었다. 새삼스레 시를 쓰려니 과거의 괴로움이 다시 밀려왔고, 내가 또 사서 고생을 하고 있구나, 관두고 싶었지만 참고 썼다. 예전에는 막막하고 미로처럼 느껴지던 시가 이상하게도 저절로 해결되면서 써졌다. 이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나 보다. 시를 끊고 10년이 지났는데 이 새로운 기쁨은 뭐지? 시가 다시 좋아졌다.
우리 집은 꼭대기 층이다. 눈만 뜨면 하늘이 보인다. 창문으로 7월의 탐스러운 구름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위로가 된다. 별은 아쉽게도 볼 수가 없다. 가끔 북극성만 보인다. 저 달은 비현실적인 허상 같고 기막히게 아름다워서 달로 가고 싶다. Fly Me to the Moon.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하늘, 시, 도서관, 중사(중국 사극)가 있어서 남은 시간은 걱정이 안 된다. 외롭거나 심심할 일이 없다.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된다.
오랜만에 평론가 선생님들의 심사평을 듣게 돼서 정말 설렌다. “유성호 선생님, 황정산 선생님 제 시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의 기분을 아는 비둘기가 오늘도 변함없이 7월 뙤약볕 아래서 쓸모없는 날개를 접고 빨간 발가락을 종종거리며 돌바닥을 쪼고 있다. “안녕, 비둘기야? 나 드디어 시인 자격증 땄어. 축하해 줘.”
강은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5년 제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영어학원 운영
현재 영어 개인 과외
제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품 중에서
입스 증후군*
전기가 나갔다 여름은 정전이다
냉장고가 멈췄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혼자만의 부엌
남자의 냉장고는 썩기 시작했다 남자는 엉망진창이 된 길을 보았다
가자미의 상한 바다와 오렌지의 조각난 눈빛을 보며
날아온 야구공에 맞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일곱 살 운동장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를 향해 야구공을 던졌다
공은 손을 넘고 가슴을 넘어 머리통을 맞췄다
고꾸라진 아이가 울었다 몸은 충돌의 순간을 기억했다
잊기 위해서 울음이 터질 때마다 남자는 춤을 췄다
이제는 남자의 춤도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 냉장고처럼 몸도 전기가 나갔다
돈은 순서대로 돌려받는데 집주인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사라졌다
허공에 흩어진 전세금은 보랏빛 수국의 헛꽃들
상하기 직전의 음식들을 모아 잡탕찌개를 끓인다
남자는 잡음을 통과시키는 귀를 막았다
유리창 맞은 편에는 하늘이 산다
화를 내지 않는 친절한 이웃 하늘은 전기가 나가지 않았다
하늘은 아프지 않고 딸린 식구들도 건강하다
달콤한 뭉게구름이 주먹만 한 별을 만든다 별빛이 문지방을 지운다
해와 달 모양의 구름은 여름에 맞춰 춤을 춘다
하늘은 남자를 망가뜨리지 않았다 하늘은 주인도 세입자도 없고
하늘에 착한 눈동자를 가진 새가 날아간다
하늘은 사기 치지 않고 전기가 나가지 않는다
남자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갑작스럽게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
죽도
음소거가 된 티브이 화면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었다
얼굴로만 우는 울음은 더 처절하다
외할머니의 방은 섬 같았다
전쟁통에 아들을 잃고 정신이 뒤엉킨 할머니
새가 울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 방에서 혼자 밥을 먹던
생강 같은 얼굴로 먼 하늘을 보던 빈 눈동자
할머니와 나는 평행선이었다
할머니의 손바닥에는 내보일 패가 없었다
진혼곡이 흐르는 방바닥
밤과 낮이 뒤섞인 창문
아들 사진이 사라진 방에는 죽은 공기만 떠다녔다
은비녀를 한 할머니는 겨울비처럼 웃었다
쑥부쟁이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하얀 머리카락은 자라지 않았고 눈과 손은 퇴화했다
가운뎃점 같은 입에는 얼음꽃이 피었다
헐거운 저고리 사이로 실성한 바람들이 들락거렸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햇빛이 없었다
그림자가 없는 거미들
겨우살이가 방 안을 뒤덮었다
우크라이나 할머니는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
너무 많은 새까만 물은 구렁이 같다 물의 끝은 보이지 않고
숨이 탁탁 막히는 절벽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푸른 머리카락
카페 안은 어둠을 밀어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색으로 5년 동안의 안부를 전한다
푸른색 속에는 그녀가 살았던 섬의 바다가 있고 등대가 있다
그녀는 바다를 떠났지만 아쉬워서
머리카락에 바다를 담아 왔나 보다
사람들은 바다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는다
시계는 바닷물에 잠겨 조금씩 느려지고 있지만
눈치채는 사람은 없다
주인은 피곤한 얼굴로 파랗게 물들어 가는 창밖을 본다
탁자도 커피잔도 유리창도 파랗게 물드는 시간
바빴던 걸음들이 속도를 늦춘다
푸른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할 시간
푸른 휘파람이 들린다
그녀의 바다는 머리카락에 담겨
그녀가 고개를 들 때마다 위태롭게 출렁인다
그녀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푸른 머리카락은 5년 동안의 일기이며 낙서다
그녀가 커피를 마신다
그녀의 얼굴은 커피색이다
그녀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소문은 들었다
검정색에서 푸른색으로 환승하며
그녀의 낙담은 확고해졌다
그녀의 전화는 뜻밖이었고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은 슬프게 보였다
아포자투라
오늘은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시작일
우리 집은 꼭대기 21층
앞집은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떠났다
광화문에 있는 직장을 향해
땅에 발을 딛기 위해선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계단 창에 갇힌 하늘은 낮아지고
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숨이 가빠진 여름
한참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10층 표지판이 사고 지점에 놓인 삼각대 같다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높이
울고 싶은 높이
앨범에 들어 있는 작년 여름은
공중에 매달린 계단 같았다
사막 모래와 선인장을 밟고 내려간다
뺨을 건드리는 모르는 바람은 차고 달다
3층 교차로
무선 이어폰을 끼고 올라오는 젊은 남자의 얼굴
싱싱하고 생생한 수박빛이다
1층 출입문이 보인다
주차 중인 차에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 즉흥곡
불협화음의 계단 밟기 아포자투라
눈꺼풀을 여는 아포자투라
차를 만들며
말린 꽃에 따뜻한 물을 붓자
여왕의 속눈썹이 흔들렸다
가둬 놓은 3월이 기지개를 켠다
잘 마른 봄은 변심하지 않았다
싱싱한 향기가 봄 마차를 몰고 온다
물 지나간 자리마다 한 번 두 번 손가락을 펴며
정지된 봄을 흔든다
얼음에 갇힌 붉은 화산
살 오른 뺨에 발그레한 수줍음
여왕이 어색하게 웃는다
11월에 만나는 봄은 달콤하고 시다
역주행은 위험하지 않았다
잠 속에서는 행복도 키가 작고
말린 꽃봉오리는 둥근 유리창
찻잔의 물이 휘어진다
여왕은 포위됐다
책상다리한 꽃잎에 두꺼운 매듭이 오밀조밀
검정색 입김이 낀
가짜 봄의 테두리가 서걱거린다
잘 마른 11월의 낙엽처럼 바삭바삭
여왕이 깨어날 시간
투명한 유리잔에 꽃잎이 팔을 벌리며 눈을 뜬다
달빛을 닮은 백목련
가을 혓바닥 위에 활짝 핀 봄을 얹는다
나는 눈으로 귀로 입술로 지각한 봄을 맛본다
-미국최대한인포털 뉴욕코리아, John Ki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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