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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바늘구멍 속의 낙타
고형렬
나는 지금 바늘구멍 속을 지나가고 있다지겨운 머리통은 겨우 빠져나왔는데어깨가 통 빠지지 않는다이렇게 쌍봉낙타는 바늘구멍 속에 걸려 있다지독한 비극은 해학이 되고 말았다이 바늘은 이번에 운이 좋지 않은 것 같다내 운명처럼 내 몸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 같다나는 바늘을 질질 끌고 간다바늘이 목과 허리를 마구 찔러댄다
밖을 내다본다 구름이 한가롭다 지구가이처럼 맑은 가을을 만들 때가 있다한글이 만들어지던 조선 초기나 당대나 마찬가지바늘구멍을 빠져나간 바람들이신들의 양식이던 화강암 흰돌을 우물우물 먹고 있다또 한쪽 어깨가 빠지지 않는다눈알도 귀도 입도 손도 다 빠져나왔는데내 뒤에 있는 이 어깨가 나오지 않는다
울불퉁한 쌍봉낙타가 더럽게 바늘에 걸려 있다처음 나의 목표는 전방 일 킬로미터가 아니었다결국 나는 이렇게 바늘에 걸려 살 것이다다 살고 나면 바늘만 그 자리에 남을 것이 바늘구멍이 내 몸이 걸렸던 곳
이 사실을 누구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나의 죽음도 생각하며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나는 목걸이처럼 바늘을 목에 걸고 저 길을 걸었다보게 나의 이 기막힌 바늘 목걸이를엉거주춤 바늘구멍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를나는 지금 바늘구멍에 걸려 있다
****************************이 시속에서 그대는 낙타다. 바늘구멍이나 다름없는 한 생을 통과하려는 것, 빠지지 않는 어깨로 인해 바늘 구멍을 목걸이처럼 매달고 다닌다는 것, 생은 찰나이지만 그것을 통과하기는 얼마나 힘든 고투인가. 이 시의 선명하고 독특한 줌 렌즈 속에서 그대는 절대절명의 현주소를 응시하며 삶에 대한 경외감마저 교감하게 될 것이다.
고형렬 시인은 강원도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청봉 수박밭> <성에꽃 눈부처><김포 운호가든 집에서><밤 미시령>등 다수가 있으며, 지훈상, 일연문학상, 백석문학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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