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
이병률
나에겐 쉰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을 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 원도 부치고 오만 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 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 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그의 갈라진 말소리에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행려병자 되어 있다고
누군가 연락해왔을 땐 그의 낡은 지갑 속에
내 전화번호 적힌 오래된 종이가 있더라는 것
종이 뒤에는 내게서 받은 돈과 날짜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더라는 것
어수룩하게 그를 데리러 가는 나는 도착하지도 않아
그에게 종아리이거나 두툼한 옷이거나
그도 아니면 겹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뿐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 하고
자꾸 바라고 또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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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연이 있으신 지. 만일 그대와 누군가와 뗄 수 없는 끈이 있어서 그대와 무관하지 않은 인연으로 그대주변을 맴돌며 곤궁하고 절박한 삶에 처할 때마다 부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슨 질긴 인연인가. 이는 필경 숱한 인연이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이리라. 하늘을 지붕삼아 올데 갈데 없이 떠도는 유랑의 슬픔 또한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그것 아니겠는가. 이 시가 애잔하고 따뜻하게 스며든다.
이병률 시인은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당신은 어딘 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이 있으며,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