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정일근
조심해! 자연에도 패밀리*가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나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패밀리가 있다. 자연의 패밀리란 사람의 족보로 치자면 같은 항렬자를 쓰는 형제나 4촌쯤 되는, 그러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의 족보와는 다른, 자연의 인드라 망이 있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밀림의 왕인 사자는 고양이의 패밀리다. 고양이가 형이고 호랑이와 사자는 아우다. 은현리에 와서 도둑고양이에게 야단을 쳐보라. 달아나기는커녕 느릿느릿 왕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며 빤히 쳐다보기까지 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배경에는 도둑고양이에게 왕이 둘이나 있는 패밀리의 ‘빽’이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흘레붙는 개에 대해 뜨거운 물을 뿌리며 방해해서는 안 된다. 늑대, 은빛여우, 너구리가 개의 패밀리다. 가끔씩 개가 하이 톤의 고독한 늑대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자신의 패밀리가 누구인가를 목청 높여 알리는 것이다. 그건 또 자신들의 종족번식 방식에 대해 사람 패밀리가 존중해달라는 경고방송이다.
독야청청해서 외로울 것 같은 소나무에게도 전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같은 따뜻한 패밀리가 있다. 키 작은 벼들이 목에 힘주고 서 있는 것은 키 큰 대나무가 자신의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국화는 코스모스, 과꽃, 해바라기, 민들레, 쑥부쟁이, 도깨비바늘이 제 패밀리다. 놀라지 마라. 국화는 국내에 4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살고 1,0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쉿! 더 무서운 건 그 패밀리 밑으로 20,000이 넘는 국제적인 사조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 중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국화 패밀리들이 파업을 한다면 지구촌에서 꽃구경하기는 힘들 것이다.
향기롭고 우아한 백합에게는 냄새가 고약하고 키가 작은 마늘, 양파가 패밀리다.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 부정하거나 외면해버리지만 자연의 패밀리는 한 번 패밀리는 영원한 패밀리다. 남극의 펭귄부모는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 새끼를 살리기 위해 제 몸 아낌없이 먹이로 내주고 까마귀는 자신을 낳아 기른 어미까마귀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주며 봉양한다.
자연의 패밀리가 볼 땐 지구에 살고 있는 패밀리 중에서 부모가 자식을 쓰레기처럼 내다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패는 패밀리는, 패밀리끼리 싸우고 고소 고발하고 총질하며 전쟁을 하는 패밀리는, 이름도 고상한 호모사피엔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그 패밀리뿐이다. 문자를 가지고 시를 가지고 있다는.
*동식물을 분류할 때 쓰는 과科를 영어로 패밀리family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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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엮어준 인연이 어찌 사람뿐인가. 저 대자연이 빚어준 끈끈한 동식물의 가족사를 보라. 이름은 다르나 한 뿌리로서의, 불변의 역사는 어떤 문명의 훼방에도 그대로 보존되며 유구하다. 그들은 제각기 계보를 가지고 순응하며 상호미덕을 나누는데, 유독 비정한 인간의 존재는 과연 무슨 과에 속한단 말인가. 멈출 수 없는 포악함과 잔인성, 무감각적인 인간존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자성해야 함을 이 시가 진지하게 일깨워준다.
정일근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 1985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가, 1986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외 다수시집과 시선집 <첫사랑을 덮다>가 있다. 한국시조작품상,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